본문 바로가기
삶은 여행/경상도

풍기 부석사 석양

by 삶은 여행 2013. 7. 17.



눈 소식으로 풍기에 있는 부석사로 향하였습니다.

그러나 눈은 이미 녹았고, 날씨는 춥습니다.

추워서인지 부석사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조금 늦게 도착해서 해는 이미 서산 너머 구름속으로 들어가 버렸네요 ㅠ.

 

부석사의 석양은 능선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최대한 능선을 살려보려고 했습니다.

무량수전 처마와 함께...

석탑과 함께하는 부석사 석양입니다.


 

안양루와 석양



부석사의 또다른 볼거리인 안양루,

안양루는 아래에서 보면 사진처럼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무량수전에서 내려다 보면 아담한 모양을 보여주는 건축물입니다.

안양루는 입구쪽에서 보면 '안양문'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으며, 무량수전쪽에서 보면 '안양루'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안양문 현판은 부석사 현판 자리에 걸여있었으나, 이승만 전 대통령 글씨 '부석사' 현판을 걸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역시 독재자는 자신이 대단한 것처럼 착각해서 문화재를 존경하는 마음도 약하다 봅니다.

이승만이 부석사 편액은 1956년 1월 19일 동아일보에 소개된 기사를 보면 '지난 16일 하오 대통령 전용차로 서울역을 출발한 이 대통령 부처는 17일 상오 9시경 경북 영주군에 있는 부석사에 도착, 동사 김주지의 안내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하여 조사당 벽화, 석탑, 범종각, 안양루 등을 시찰한 후 동사의 '부석사'를 휘필하고 십칠일 하오7시 20분 서울역에 도착 경무대로 기저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찰이름인 '부석사' 현판이 안양루에 걸릴 자리로는 적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석등 사이로 보이는 부석사 무량수전 편액, 고려 공민왕이 썼다고 전해지며, 공민왕은 원나라에서 자란 왕으로 편액의 글씨를 세로로 써는 원나라 방식을 사용했던것이라고 합니다.
무량수전 편액을 공민왕이 작성했다는 이야기는 공민왕은 1361년 홍건적이 침입해 개경이 함락될 위기에 놓이자 몽진을 해야 했으며, 여러가지를 고려한 끝에 피란지로 결정한 것이 영주(순흥)였다고 합니다. 공민왕은 그 해 추운 겨울에 소백준령을 넘어 순흥에 도착했으나, 순흥의 날씨가 너무 추워 안동으로 다시 옮겨 머물다가, 홍건적을 물리친 후인 이듬해 2월 개경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당시 순흥에 머물 때 공민왕은 영주지역에 몇 점의 현판 글씨를 남기게 되는데, '무량수전'이 그 대표적인 글씨라고 합니다.

 

부석사 무량수전입니다.

아주 추운 겨울 석양무렵이라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1376년에 지은 목조 건축물로 국보 제18호이며,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한국ㅇ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입니다.

부석사의 본전으로 무량수불(아미타여래불)이 있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주심포식 팔작집입니다.

무량수전은 서방 극락세계에 살면서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으며, 아미타불은 무량수불, 무량광불이라고도 한다고 합니다.

 



'삶은 여행 > 경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경 장수황씨 종택  (0) 2013.07.17
겨울고운사  (0) 2013.07.17
영양여행 두들마을 & 가곡리 풍경  (0) 2013.07.17
군위 한밭마을 돌담길  (0) 2013.07.16
군위 삼존석불 여행  (0) 2013.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