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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행/전라도

다산유배길을 걷다

by 삶은 여행 2013. 7. 17.

 


다산초당

 

다산초당은 항사영백서사건으로 두번째 유배길을 떠난 다산정약용이 10여년간을 거쳐했던 곳으로 강진에 온 다산은 주막집,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의 집을 전전하다가 외갓집 사람들(해남 윤씨)이 써왔던 이곳으로 거쳐를 정하였다고 합니다.

다산이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조선시대 성리학의 관념론적인 학풍을 실용적인 과학사상으로 이끌어내는 실사구시의 실학을 집대성한 곳으로 다산이 천주학쟁이로 몰려 이곳으로 유배를 오지 않았다면 그의 위대한 업적이 이루어 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다산유적지에는 다산4경이라고 하는 다산이 거쳐하였던 동암, 제자들의 유숙처였던 서암, 다산이 직접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다산이 직접 병풍바위에 새긴 '정석'이라는 글자를 새긴 정석바위,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흑산도로 유배를 간 둘째형 약전을 그리며, 고향을 생각했다고 하는 천일암이 있습니다.

 

 

 

다산초당의 현판은 추사김정희의 글자를 집성하여 제작한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다산초당은 1957년 노후로 붕괴돈 것을 다산유적보전회에서 복원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는 다산초당 바로 앞 마당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유숙하였다고 하는 서암은 다산초당의 왼쪽편에 있습니다.

 

 서암의 굴뚝입니다.

 

 

 다산초당의 오른쪽으로 조그마한 연못이 있고 이곳에 물이 내려오는 곳이 아마도 약천인것으로 보입니다.

 

 연못 가운데 다신이 직접 쌓았다는 '연지석가산'이 있습니다.

 

 

 다산의 거치라고 알려진 동암입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더 사랑하게 된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다산초당을 오를때는 정석바위를 몰랐고, 그래서 다산초당 뒷편 어디엔가 있는 정석바위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 사진은 다산수련원 로비에 있는 것으로 탁본의 흔적이 있어 왜 이곳에 있을까하는 궁금증에서 찍어놓은 사진입니다.

왜 '정석'이라는 글자를 탁본으로 뜨는 체험을 하는지 이제 알것 같습니다.

 

흑산도로 유배간 형 약전을 그리워하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천일암입니다.

이곳에서는 구강포(강진만)가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이제 다산이 그리움을 뒤로 하고 천일암을 지나서 백련사로 갑니다.

백련사는 다산과 친구처럼 지냈다고 하는 혜장스님이 있었던 절입니다.

839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고려후기 귀족불교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백련결사운동의 본거지이며, 8국사 8대를 배출한 유서깊은 곳으로 사찰주변으로 300~800년된 동백나무 7,000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백련사 길은 유고와 불교라는 전혀 다른 두개의 사상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한 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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