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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행/경기도

여주 고달사지

by 삶은 여행 2013. 8. 23.

구둔역에서 돌아나오는 길에 여주 고달사지를 들렸습니다.

고달사지가 불에 탄 것은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 모두 불타없어졌다고는 추측은 하지만 폐사지가 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폐사지로 '고달'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고달'이라는 석공이 모든 석조물을 만들었다고 하며,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절을 이루었고, 절을 다 이루고 나서는 스님이 되어 훗날 도를 이루어 큰 스님이 되어 '고달사'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현재 고달사지 맞은 편에는 신고달사가 있는 이는 천태종이라고 되어있으며, 고달사지 입구에는 조계종 고달사라는 푯말이 달려있습니다.



고달사지를 내려다 보면서 옛절의 규모를 생각해 봅니다. 이곳에 불국토를 건설하려는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대로 남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렇게 그나마 절터의 규모를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된 것도 꽤 오래전의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블친이신 한결같이와 금모래은모래 님이 감탄하였던 석조물입니다. 이름이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라고 합니다. 혜목산 원종대사탑비를 받쳤던 귀부와 비신 위에 얹혔던 이수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보물6호로 1915년 봄에 넘어져 8조각으로 깨진 비신-아마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은 이 비를 일본으로 반출 하고자 하다가 깨진 것이라고 추측을 해 봅니다.-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고 있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한국 귀부와 이수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하며, 여의주를 물고 있지 않은 것이 특이하다고 합니다.

금모래은모래님은 여러번 보았을 터인데도 감탄을 합니다. 이곳 저곳 사진을 찍어봅니다.












보물도 이정도로 아름답고 감탄할 만한데 그보다 더한 국보4호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 높은 곳에 있지 않으니 보고 가자고 하십니다.


'고달사지 승탑'입니다. '국보 4호'라고 합니다. 고려시대 초기 화강석제 부도라고 하며, 부도 중에서 매우 뛰어난 거작이라고 합니다. 신라 말의 고승 원감대사의 묘탑이라고도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다만 고달사지에 남아 있는 원종대사 묘탑인 고달사 원종대사 혜진탑보다는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국보4호인 고달사지 승탑도 이곳 저곳 사진으로 남겨봅니다.





고달사지 승탑 앞에 있는 석조물인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종대사탑입니다. 보물 7호라고 하며, 고려 경종 2년(977)에 화강석으로 조성한 부도라고 합니다.  4매석이 맞물려 짜인 넓은 장방형의 지대석 위에 4매로 짜인 사각의 하대구조가 특이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