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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여행/전라도

사람사는 철길마을 여행

by 삶은 여행 2013. 7. 17.





그곳에는 사람사는 철길이 있었습니다.



철길마을의 유래는 

군산 철길마을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기업인들이 이곳에 방직공장을 지었고 가난한 사람들이 노동을 하기위해 속속 모여 들면서 속칭 판자촌이 형성되었고. 이후 1944년경 판자촌 사이로 철길이 놓이면서 철길의 이름을 1950년대 중반까지는 '북선제지 철도', 70년대 초까지는 '고려제지 철도', 그 이후에는 '세대제지' 혹은 '세풍철도'라고 불리우다가 쌍천 이영철이 개정간호대학을 무상으로 이양했던 세풍그룹이 부도나면서 새로 인수한 업체인  '페이퍼코리아선'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현재는 기차가 운행하지 않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부터 현대까지 고단했을 노동자의 삶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철길마을이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군산시에서도 정비하고 새로운 도보관광지를 만들게 되었다고 해서 이곳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오히려 편안하게 쉬어야 할 주말을 엄청나게 비싼 고가의 DSLR을 들고 나선 낮선 방문자들을 맞이애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지 않았나 한다. 그렇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철길마을 건너편에는 현대식 아파트와 이마트가 자리잡고 있어 개발에 대한 욕구가 많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덕분에 그나마 지금의 집들에서 더 오랜기간동안 그들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위 사진의 "당신이 불편했을 거란 생각도 했었죠"라는 글귀가 헤어진 연인 사이의 글이 아니라 이곳 철길마을을 찾았던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만남은 편안하게"라는 글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군산 철길마을은 개발과 개발사이 소외된 지역에 놓여있습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 큰길 바로 맞은편에는 이마트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철길마을이 철길마을로 보존될수 있을지. 

이곳 사람들의 삶은 조금더 나아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생깁니다.


철길마을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철길마을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없을까요?

철길마을 한켠에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협동조합형 카페를 만들면 어떨까요? 

마을주민들중에서 연세많은 어르신들이 함께하는 철길마을 투어를 함께하고 일정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은 안될까요? 철길마을 주민들의 협동조합 식당을 하나 만들면 안될까요?

어떤 방법을 찾던지 간에 철길마을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철길마을 사람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저 철길마을은 곧 우리곁을 떠날것 같기 때문입니다.



..군산 철길마을의 소소한 풍경...















저 늙고 병들어 죽은 사진기도 많은 추억들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쌀쌀한 3월에도 이곳을 찾아옵니다.


여행을 함께한 지인이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을 찍어놓은 사진에 나온 순간 찍은 사진입니다.


이게 뭔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ㅋ



가끔은 언네트워크 된 시간을 보내도 좋습니다.


저 계단은 어떻게 올라가서 2층집으로 들어갈까요?





덧붙임

70년대 초까지 불리워졌던 '고려제지 철도'의 김원전 사장은 이승만 시절 자유당 후보로 출마, '먹고 보자 김원전, 찍고 보자 김판술'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돈서거로 당선됐고, 세풍 고판남 회장도 전두환 시절에 국회의원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군산시민이라도 50대 후반을 넘긴 세대는 '페이퍼코라아선'을 잘 모르는 분들이 더 많다고 합니다.


'세대제지' 또는 '세풍철도'라고 불리우던 시절의 세풍그룹의 경암학원은  지금의 군산간호대학교의 전신인 개정간호학교를 무상으로 인수받았고, 법원경매로 나온 개정병원을 인수하여 봉정요양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풍그룹은 군산에 기반을 둔 기업으로 53년 성냥제조업체로 출발, 합판사업에 주력하다가 73년 제지업에 손을 댄데 이어 사세를 확장해 한국견직공업, 내장산관광호텔, 우민주철, 전주방송, 세풍월드 등의 계열사를 갖고 있엇다. 세풍그룹은 전주방송허가와 관련하여 10억대 로비의혹을 받았으며, F1 그랑프리 사업에 무리하게 진출하였다가 부도를 맞게되고 그룹이 해체되었다. 

세풍그룹의 이미지가 지역주민에게 실추된 것은 94년 군산시 구암동에 세풍아파트 건설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옛 영명중,고등학교 자리에 세풍아파트가 지어지면서 군산시가 계획한 도로가 심한 곡선으로 바뀌면서 세풍그룹의 명성에 흠집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세풍은 민방사업권을 따내 전주방송을 개국했고, F1그랑프리 대회유치에 성공하면서 기업이 흥하는가 했으나 자기자본없이 무리하게 대출 받은 엄청난 은행 자금으로 시작됐던 사업들이 IMF를 만나면서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97년말 워크아웃 기업으로 선정되고 98년 10월 워크아웃으로 그룹이 해체되는 비운을 맞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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