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 유적을 둘러보다
3. 1절을 앞두고 때마침 천안으로 출장이 잡혀 시간을 내어 유관순열사기념관과 열사의 생가터와 매봉교회를 둘러보았습니다.
유관순열사기념관과 유관순 생가를 방문하기로 한 사실상의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그 이유는 금번 방문을 통해서 해소가 되어
따로 기록하지는 않습니다. 위의 사진은 유관순 열사의 생가터와 매봉교회입니다.
당시 공주에 미국감리교회에서 파송한 로버트 샤프 선교사와 그의 아내인 앨리스 샤프(한국명 사애리시) 선교사는
남학교인 명설학당과 여학교인 명선학당을 설립하였고 이 두 학교를 모태로 윌리암스(한국명 우리암) 선교사가
영명학교를 세웠다고 합니다.
공주의 영명학교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의 동참하는 등 민족운동의 요람이었으며,
특히 공주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 중 한 사람이 유관순의 친 오빠인 유우석이라고 합니다.
당시 로버트 샤프의 부인인 앨리스 샤프(사애리시)선교사는 매봉교회에서 유관순을
눈여겨보고 영명학교로 데려와 공부시켰고 이후 이화학당에 진학하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매봉교회는 1901년 박애숙전도사에 복음이 설립되었다는하며,
1905년 국권회복을 위해 일어난 을사의병을 도왔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예배당이 불살라졌으나,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의연금을 모아 대한매일신문사에 보냈는데
여기에 참여한 교인의 숫자가 82명이었다고 합니다.
1919년 4월 1일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이 만세운동에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전교인이 참여하였다고 하며,
결국 교회는 집회금지령이 내려졌고 예배당을 불살라 졌으며 해방이 될때까지 예배를 드리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해방이후 1967년 이화여고에서 동창생들이 모여 다시 교회를 세웠으며,
현재 교회는 1998년 감리회 남부연회에서 모금하여 다시 건축하였다고 합니다.
유관순 그녀는 충효를 중시하는 유교적 사상과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와 평화라는 기독교 사상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으며, 자신도 조국을 위해서 몸 바쳐 일하는 여성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기독교적 희생정신으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의연히 일제의 재판권을 부정할 수 있었다.
나아가 옥중에서도 만세운동을 주도하는 등 일제에 대해 민족적 자존을 지키다가
결국 순교자적 죽음을 맞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초기 한국기독교의 단편적인 모습들을 보면서 최근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개신교회들
그리고 그 교회의 중심축에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목사들, 장로들 그리고 그들에게 기대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일부개신교 신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용산참사 등 에서 보듯이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와 평화는 매일 억압받고 있으며, 제주강정마을 해군기지, 4대강 사업 등에서
극명히 보여주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생명이 매일 위협받고 소멸되어가고 있지만,
이미 권력기관화되어버린 개신교 교회는 애써 모른척하거나, 스스로 권력의 편에서
우리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생명, 자유, 평화를 억압하는 존재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유관순열사 기념관 앞마당의 조형물입니다.
조형물 맞은 편의 유관순열사기념관이 보이고요.
정면으로 보이는 유관순열사추모각입니다.
추모각의 글씨는 갈물 이철경 서예가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추모각에서 내려본 병천읍내 모습입니다.
유관순열사의 표준영정입니다.
사실 이 영정때문에 유관순열사 기녀념관을 방문하게 됩니다. ㅎ
이 영정은 2007년 2월 28일 문화체육관광부 표준영정 제78호로 지정되었다고 하며, 윤여환 화백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유관순 열사의 영정은 한때 친일화가인 월전 장우성의 작품이어서 천안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서 표준영정의 작가를 바꾸어야 한다는 많은 항의가 있었으며, 이로 인하여 이 표준영정이 제작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월전 장우성 미술관은 제가 살고 있는 이천시에 있습니다. 그것도 시립미술관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립미술관을 바꾸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유관순열사 기념관 앞에는 타임캠슐도 있습니다.
주차장 인근에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고요.
유관순 기념관에서 약 1.3km정도 떨어진 곳에 유관순열사의 생가터가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가 다녔다고 하는 매봉교회도 있고요 매봉교회는 현재 유관순 열사 생가터 바로 옆에 있습니다.
3. 1절 기념예배가 3월 1일 금요일 열린다고 되어 있습니다.
교회 지하에는 유관순 열사기념관이 있는데 일요일은 열지 않아서 들어가 보지 못하였습니다.
기독교인인 아닌 일반인을 위해서 주일에도 기념관을 개방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운영에 문제가 있다면 유료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매봉교회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1900년도 초반의 기독교
예배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를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고요.
또 다른 아이디어로는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에는 유관순 열사 생가터 주차장 인근에서
매주 병천독립운동과 관련한 실제 그당시의 상황을 고증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
그런것이 사회적기업으로 지원을 하면서 일반인들이 당시 복장과 분위기로
만세운동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그러면서도 청소년들과 아이들에게 독립운동과 애국심을 심어줄 수 있지는 않을까요?
그저 팜플릿 한장에 생가터만 덩그러이 복원해 놓으면 그만일까요? 뭐 이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곳은 유관순 열사의 생가터를 복원하면서 유족에게 생가터를 관리하면서 살수 있도록 집을 지어준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아무도 살고 있지는 않다고 하네요...
3.1절을 앞두고 독립운동의 상징이 유관순열사의 흔적을 찾아보았습니다.
서울땅은 제가 워낙가기싫어하는 곳이므로 제외하고 공주지역은 한번더 다녀와야 할 듯 합니다.
2013년 3. 1절을 맞이하면서 ....
2013년 2월 25일은 18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이 있는 날입니다.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아버지는 친일인명사전에 친일인사로 소개되고,
좌익군인으로 무기징역선고와 형집행정지, 독재자,
대한민국 경제개발의 선구자 등으로 인식되고 알려져 있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