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다산 유배길을 걷다
다산 정약용 동상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조선 정조 때 문신이다.
그는 조선 실학을 집대성 하였고, 수원 화성 건축 당시 기중가설에 따른 활차녹로(도르래)를 만들었고
이를 이요하여 거중기를 고안하여 건축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 정조의 다른 최측근인 홍국영과 인천관계이기도 하다.
1794년 천주교 신부인 주문모 사건에 휘말려 좌천되기도 했으며, 이계심의 난에 이계심을 처벌하지 않고
관리의 부패에 항의하는 자들에게 천금을 주어야 한다고 하는 등 애민의 상징이 되었다.
정조가 죽고 1801년 신유박해(사옥)이라는 천주교 탄압으로 정약용은 천주교 신자로 지목받아 유배형을 받게 된다. 이때 다산은 포항 장기로 유배되었다. 이후 9개월이 지난 후 황사영백서사건이 발생하자 정약용은 다시 서울로 불려와 조사를 받고 강진으로 유배를 옮기게 된다.
강진유배기간 동안 다산은 경세학과 경학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500여권에 달하는 그의 저서 대부분이 유배지에서 이루어졌으며, 유배지에서도 제자들을 모아 교육을 하였으며,
그의 유배지 제자들로 이청, 황상, 이강희, 이기로, 정수칠, 윤종문 등이 있다.
다산수련원 전경-지금은 광주YMCA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진은 이번이 처음 방문입니다.
다산수련원에서 겨울캠프를 진행하였기에 다녀왔습니다.
삼남대로를 따라가는 정약용 유배길은 총61.5km로 20시간이 걸리는 코스인데
마침 다산수련원에서 출발하는 남도유배길 2코스가 있어 걸었습니다.
(다산수련원 -> 다산초당 -> 백련사 -> 철새도래지 -> 사의재 -> 영랑생가)
이곳은 '사색과 명상의 다산오솔길'로 이름 붙혀져 있고 총 15km로 5시간 거리라고
각종 홍보물에는 나와있습니다.
일부 자료에 따라서는 '사색과 명상의 다산오솔길'이 1코스로 되어 있으나
제가 본 리플릿에는 몇개의 코스가 더해져서 2코스로 되어 있습니다.
다산수련원에서는 구강포라고 불리던 강진만을 볼 수 있습니다.
다산수련원 앞 논밭은 이전에는 바다였으나,
전두환 정권때 매립을 해서 지금은 논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바다였다면 더욱 좋은 풍광과 경치,
200여년전 다산이 보았을 강진을 그대로 볼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다산수련원 앞뜰에는 '다산정약용 말씀의 숲' 조형물
다산수련원을 오른쪽으로 돌아나가면 처음 만나는 다산정약용 남도유배길 이정표입니다.
처음 다산수련원 앞쪽에서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한참을 망설였지만 건물뒤쪽으로 올라가면 버려진듯한 집한채가 있고
그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이정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정표를 지나면 바로 고갯길을 내려가게 됩니다.
어렸을때 큰집에 가면 저런 고갯길이 있었는데 항상 무서운 이야기가 있엇던 기억이 있습니다.
누가 고갯마루에서 목을 메어 죽었다더라, 귀신이 나온다더라 하는 이야기 말입니다.
고갯길을 넘어가면 바로 다산초당이라는 이정표가 나옵니다.
주변에는 여러음식점들과 찻집이 있습니다.
조금더 올라가니 다산유적지라는 안내표지가 나옵니다.
ㅠ ㅠㅠㅜ
다산초당 인근에 주차장이 있고 그 주차장에서 산책하면서 걸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다산초당'이 있을 것이라 내심 기대를 했지만,
다산초당은 산중턱에 있습니다.
저기를 올라가야 합니다.
에공^^
더군더나 남도유배길은 다산초당에서 다시 올라간 곳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산을 하나 넘어가는것 처럼 백련사로 이어서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ㅠㅜ
꽤 힘들겠군.... ㅎ 수평으로 걷는것은 어느정도 되지만 수직으로 올라가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게다가 내려올때 무릎이 많이 아프고 ㅠㅠ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수련원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오늘 하루 나 볼 생각하지 마라!
연습 열심히 해라!
저녁이나 보자라고 선전포고를 하고 나왔으니
돌아갈 수 도 없습니다.
노란색 표시와 사각형 표시가 같이 있습니다.
이제 줄곧 저 이정표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면 됩니다.
혼자서 걷는 길이라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기도 하고,
이것저것 상상도 하면서 갑니다.
숲길이 아주 좋았습니다.
우뚝솓아 있는 나무들도 좋았고요
아침에 벌써 다산초당을 다녀오시는 분도 계십니다.
두분이 다정히 팔장을 끼고 내려오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참 보기에 좋았습니다.
부럽기도 하고요 ㅠㅠ
조금 더 올라가니 정말 특이하게 생긴 나무를 발견합니다.
가만히 보니 굉장히 유명한 나무인듯 합니다.
정호승 시인이 이 다산초당으로 다산을 만나러 가는 길을
뿌리의 길이라고 이름을 붙혔다고 합니다.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길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
지상의 바람과 햇볕이 간혹
어머니처럼 다정하게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뿌리의 눈물을 훔쳐준다는 것을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로 가서
다시 잎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다산이 초당에 홀로 앉아
모든 길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어린 아들과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을 오르며
나도 눈물을 달고
지상의 뿌리가 되어 눕는다
산을 움켜쥐고
지상의 뿌리가 가야 할
길이 되어 눕는다.
뿌리의 길입니다.